뚱이와 고려취

이전/이규태이야기 2008. 5. 20. 18:17

우리들은 아직도 무언가를 비유할때 그 사람자체를 비유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담고 있는 소속 단체나 그 나라를 싸잡아서 욕을 한다.
그 예로 무언가 잘못이 되는 '우리 한국사람은 000 해서 안된다니깐.."하고 말을 시작하거나 끝내는 일이 있다.

그러나 그렇게 우리라고 서두를 꺼내는 사람은 한국 사람이 아닌가?
나도 가끔씩 우리 한국사람은.. 이런 말을 하지만 이렇게 욕을 하고나면 후련하기 보다는 더 속상하기 마련이다.
 
조센진 이라는 말도 그렇고 요즘은 잘쓰지 않는 엽전이라는 말도 그렇다.
또한 뚱이 라는 말도 그런가 보다.

나도 처음 듣는 말이지만 전에는 비속어로 뚱이라는 말을 많이 썼는가 보다.
이 말은 중국에서 동이(東夷)로 우리민족을 불렀던것에서 나온것으로 중국발음이 뚱이였던거 같다.
 이 말의 어원은 박지원의 열하일기 에서 어느정도 보이는데 조선사신이 중국으로 갔을때 사신의 하인들이나 관졸로 갔던 사람들의 행세와 행동이 역시 동쪽에 사는 오랑캐구나 하는 뜻이로 뚱이 라고 했던가 보다.
또한 사신들의 하인들이 타국에 있는 우리 조선 교포들을 오히려 측은하기 보다는 못살게 굴어서 좀도둑이나 나쁜 행실의 사람들은 뚱이라고 했다는 말도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일이다.
이 나쁜말의 어근들이 우리가 만들것이 아니고 다른 피박을 가하는 가해자들이 즉, 중국이나 일본인들이 부르는 뚱이나 조센진이나 이런것들을 억울해 하기 보다는 스스로 피해자임을 제 입으로 각인시키고 자기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까지 그러한 자괴감을 퍼트리게 되었고 그 것들이 우리 스스로의 자존감을 상실하게 되는 과정이 어쩌면 안으로 뭉치지 못하고 밖으로 작은 나라의 국민들의 비극적인 역사 같아서 가슴이 아프다..

이게 한이 아닐까?
흑인들이 재즈나 소울을 잘하는 것도 그 아프리카인들의 한들이 소울에서 잘 스며들어서 그런게 아닐까?

과거의 영광은 있지만 현재의 고난과 서로 화합하지 못하고 서로를 믿지 못하는 사회에서 사는 개개인들의 고난이 DNA에서 흡수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마 다윈이 맞다면 수천년의 고난의 역사는 이미 한국인들의 DNA에 이미 흡수되었고 유전으로 전해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그렇지만 최근의 한국은 과거의 한국인들이 아니다.
아직도 윗에는 백성을 사랑하거나 우리나라를 더 생각하기 보다는 자기의 안위나 영달을 더 노리고 있지만 과거의 그러한 절대적인 굶주림은 없어졌다.
또한 옛날처럼 절대적인 신분의 벽은 없어졌다.

그렇지만 실패도 학습이 되는지.
과거의 유신정권에 대한 항쟁이나 자유에 대한 갈망은 어느새 없어지고 오히려 자유가 많아진 지금 우리는 과거보다 희망을 잃고 절망에 빠져있다.
인권이 지금처럼 개취급을 받는 상황이 아닐진데도 희망을 노래하기 보다는 자괴감으로 스스로 힘들어 하고 있다.

고령화 사회로 넘어가서 그런것인지 이 사회에서 더이상 과거의 미래에 희망찬 개척적인 힘이라든지 창조적인 사람들을 더 이상 보기가 힘들어 지고 있다.

공무원이 최고의 직업이 되고 자기의 능력을 알아주는 중소기업보다는 그래도 좀 일하고서도 돈을 많이 받거나 안전한 대기업이나 공기업이 최고의 인기다.
물론 그런 사람들이 잘못된것은 아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쪽으로만 몰리는 것은 과연 옳은 일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잘못된것이 아니면 반대적으로는 옳은 것만은 아닌것...
이도 저도 아니어서
함부로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상태.
개개인에 대해 그 사람의 사정에 대해서 함부로 말을 하지 못하지만...

경제적으로는 부유한 사회가 되었지만 여전히 조선시대의 암울한 기운은 떨치지 못했다.
참으로 언제쯤 우리는 남들이 보기에 희망차고 맑은 영혼을 가진 민족이 될것인가?
라는 생각에 글쓰는 지금도 가슴이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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