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대에 필요한 자린고비

이전/지혜의 생각 2009. 12. 25. 14:24

우선 흔히 자린고비 이야기부터 하겠습니다.

제일 먼저 생각하는게 굴비 이야기죠?
아마 이게 제일 먼저 생각이 날겁니다.
워낙 돈쓰는 것을 아까워 하는 나머지 밥하고 간장만 먹다가 어느날 아들이 아버지께 우리도 고기 좀 먹자고 하니 평소와 다르게 아버지가 선듯 그럼 우리도 고기를 한번 먹어 볼까? 하고 이야기 하더랍니다.
그래서 아들이 좋아 했는데 한편으로 의심도 했더라죠. 평소에 안 사주시다가 갑자기 사 주신다고 하니 가족들이 다 놀랬을겁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아버지는 장에 가셔서 조기를 사 오셨더랍니다.
당연히 가족들은 당연히 놀라는 한편으로 좋았겠죠.
아! 우리도 이제 고기를 먹겠구나...
그렇게 기대를 하고 있는데 아버지께서는 조기를 부엌으로 가셔서 요리를 하는게 아니라 천장에 조기를 매다는게 아니겠습니까?
책 보는 저도 생각했었죠.
'뭐 할려고?'
그런데 갑자기 아버지께서 '밥먹자' 라고 하시는게 아니겠습니까?
황당!
당연히 아들은 조기를 먹고 싶은 마음에 밥을 먹으면서 계속 쳐다봤겠죠..
그런데 갑자기 그 모양을 보던 아버지..
"어허, 그렇게 계속 쳐다보면 짜워서 밥을 많이 먹으니 한번만 쳐다보고 밥을 먹으라"
하고 말했다는 이야기..

정말 자린고비 이야기의 하일라이트입니다.
조기를 보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보는 것 조차 짭게 되고,
그게 밥을 많이 먹게 되니 한번만 보는게 절약하는것이다라는 논리...

그 밖에

쉬파리가 장독에 앉았다가 날아가니 그 다리에 묻은 장이 아깝다고 해서 '저장 도둑놈 잡아라'고 외치며 그 파리를 잡으려고 단양 '장벽루'까지 따라 갔던 일. 

무더운 여름날이 되어 어쩌다 부채를 하나 사 오면 그 부채가 다를까 염려되어 부채를 벽에 매달아 놓고 그 앞에 가서 머리만 좌우 전후로 움직였다고 하는 일. 

하도 고기를 사다 먹지 않기 때문에 동네사람이 어쩌나 보려고 생선 한 마리를 그 집 마당 가운데에 던져 넣었더니,  이를 발견하고는 '이 밥 도둑놈이 들어 왔다'고 법석을 떨며 냉큼 집어 문 밖으로 도로 내던진 일 

자기 없는 사이에 장모가 놀러 왔다가 돌아가는데 인절미 떡을 해서 먹고 약간 을 보자기에 싸서 가지고 가는 것을 도중에 자린고비가 보고 펄쩍 뛰면서 그것을 도로 빼앗던 일 등이 자린고비가 행해 온 이력들이다.

여러가지가 있지만 대충 이런 이야기를 하면 자린고비라고 알아 들어실것이다.

그러나 자린고비는 잘못된 고유명사다.
어디서 잘못되었는지 몰라도
요즘에 자린고비라고 하면
"자린고비의 어원은 '절인고비'이다. 여기서 고비라 함은 숙근성 다년초로 관엽식물인 고비를 말하는 것으로, 고사리와 함께 데쳐 먹는 나물의 대명사로 꼽히는 바로 그것이다."


라는 식으로 잘못된 정의를 내리는가 한편, 다른 한편으로는
다음 국어사전에는
다라울 정도로 인색한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

 이라고 적혀있고
흔히 고사라고 밝히는 곳에서도
구두쇠의 대명사 玼吝考妣(자린고비)는 원래.‘절인고비’라는 말에서 유래되었다. 考妣(고비)는 돌아가신 아버지와 어머니 이고,여기서는 제사 지낼 때 쓰는 紙榜(지방)을 의미한다. ’지방‘은 원래 제사가 끝나면 불사르게 되어 있으므로, 제사 때마다 종이를 바꾸어야 한다. 하지만 그 종이가 아까워서 한번 썼던 것을 기름에 절여서 두고두고 다시 쓰는 사람이 있어, 그를 ’절인 고비(考妣)라고 불렀다가 變音(변음)하여 ‘자린고비’가 되었다고 한다

라고 하지만 자린고비의 정확한 유래를 아는 사람은 드물다.

또한 이것이 설화인지, 동화인지 조차도 구별을 할수 있는 사람은 더욱 더 드물것이라 생각이 든다.

그러던중에 12월23일 느티나무 172회 - '나누기 위한 절약 - 자린고비 조륵'  (밤10시50분)
에 했던 역사 한편을 보고서 문헌을 찾아보니 이 인물이 살아있었던, 그리고 역사에 기록이 된 인물이라고 알게 되었다.

성함은 조륵이라고 하였으며 한영조씨의 일가이고 지금은 그후의 10대손이 살아있고 족보도 전해 온다고 한다. 한때 조선 제일의 자린고비로 불렸던 조륵(1649~1714)음성군 금왕읍 삼봉리 사람으로, 근검절약하여 큰 부자가 된 뒤 어려운 백성들을 많이 도와 가자(加資: 정3품 통정대부 이상의 품계를 올리는 일)까지 받았다고 한다

전해 오는 것의 문헌은 음성군 금왕읍 삼봉리에서 채록하여 1982년에 출간한 내고장 전통가꾸기-음성군-』에 수록하였다. 『음성군지』『음성의 구비문학』 등에도 실려 전한다.

그러한 인물이 어떻게 그렇게 와전이 되어 악명의 이름으로 자린고비의 대명사가 되었는지는 모호하나
이분이 처음부터 그렇게 된것은 아니라고 한다.
처음에는 신분은 양반가문이나 불우한 환경으로 이렇게 저렇게 떠 돌아다니다 어느날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달걀을 하나 얻었다가 이것을 암닭에게 품게 하였더니 이것이 병아리가 되고 이것이 암닭이 되어 이것이 계기가 되어 커다란 부를 얻게 되었다. ( 작은 재산을 큰 재산으로 불림)
그때 그분은 " 분하거든, 너도 복을 타고 나거라" 라는 말은 하는 것으로 부를 이루는데 절약이 습관이 되었지만 그래도 마음 속으로는 부는 자신이 이루는게 아니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던거 같다.

또한 이분에 대한 설화는



이렇게 일전 한 푼도 남에게 주거나 빌려주는 일이 없고, 인정도 사정도 눈물도 없이 모으고 또 모으다 보니 근동에서는 둘도 없는 큰 부자가 되었다.

그렇게 자린고비로 방방곡곡 소문이 날 대로 난 어느 날, 전라도에서 유명한 자린고비가 찾아와서 “조선생, 나도 전라도에서는 소문난 구두쇠인데, 어느 정도 구두쇠여야 큰 부자가 될 수 있습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조륵전라도 구두쇠가 묻는 말에 쓰다 달다는 말도 없이 한참을 있다가, “그러면 나와 같이 나갑시다.” 하고는 전라도 구두쇠를 데리고 충주 탄금대까지 갔다. 가는 길에 전라도 구두쇠는 신발을 아낀다고 교대로 한짝은 신고 한짝은 들고 가는데, 조륵은 아예 신발 두 짝을 모두 들고 갔다. 그것만 봐도 조륵이 한 등급 높은 자린고비가 분명했다.

조륵탄금대에 오르자 전라도 구두쇠한테, 시퍼런 강물이 굽이쳐 흐르는 강물 쪽으로 뻗은 소나무가지에 매달리라고 하였다. 전라도 구두쇠는 영문을 몰랐지만, 큰 부자가 되고 싶은 일념에 소나무가지에 매달렸다. 그러자 조륵이, “이제 한쪽 팔을 놓으시오.” 하였다. 그대로 따라했더니 한참 후에, “됐소. 이젠 한쪽 팔도 놓으시오.” 한다. 전라도 구두쇠는 시퍼렇게 질려서, “아니, 그러면 저 강물에 빠져죽지 않습니까?” 하고 소리쳤다.

아니나 다를까, 몇십 길 되는 낭떨어지 밑에는 시퍼런 강물이 굽이치며 혀를 낼름거리고 있었다. 전라도 구두쇠는 얼른 두 손으로 나뭇가지를 붙들더니 죽을 상이 되어 벌벌 떨었다. 그제야 조륵은, “그러면 이제 올라오시오.” 하고는, 전라도 구두쇠가 땀을 뻘뻘 흘리며 나뭇가지에서 벗어나자, “큰 부자가 되려면 예사로운 구두쇠 정도로는 안 됩니다. 방금 전 나뭇가지에 매달려 죽게 되었을 때의 순간을 잊지 마시오. 만사를 죽기를 각오하고 실행한다면 목적한 일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오.” 하고 말했다. 전라도 구두쇠는 조륵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밤, 전라도 구두쇠는 조륵의 사랑방에서 자게 되었는데, 몇 년을 내버려두었는지 창구멍이 뚫어져서 바람이 숭숭 들어왔다. 전라도 구두쇠는 주머니에 들어 있던 창호지 조각을 꺼내어 저녁밥을 먹을 때 남긴 밥풀 몇 알을 붙여서 대강 창구멍을 가리고 잤다. 그러고는 아침에 조륵의 집을 나서면서, “조공! 문에 발랐던 종이는 내 것이니 뜯어 가렵니다.” 하였다. 조륵은 눈빛 하나 변하지 않으면서, “암요, 떼어 가시오.” 하였다.


그렇게 우리가 알고 있는 자린고비 생활을 하던중 어느날 나라에 흉년이 들고 환갑이 다되어 가던중
족제비가 암닭을 물고가는 사건이 생긴다.
평소에 부는 하늘이 주신거라는 생각을 하던중 이 사건이 벌어지므로 해서 조륵은 이제 내가 어렵게 쌓은 부를 베풀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내가 잘 살려고 구두쇠 노릇을 한 것이 아니고, 내 평생의 사업으로 실천해 온 것이며 이제 내가 할 일은 끝난 것이요


라며 환갑때 그 해에 가뭄에 시달리던 지역주민 1만호에 선정을 베풀었다고 하였다.
이에 평소의 구두쇠 행각을 유심히 보아 벌을 내릴려고 했던 조정에서는 이런 선정에 감동하여 벼슬을 내릴려고 했으나 사양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빈털털이로 세상을 하직하면서 자식들에게는 이제 너희는 너희 스스로 일어서야 한다고 하였다고 하였다고 한다.

사후에 그 지역주민들이 감동하여 '자인고비(慈仁考碑)라는 비석을 세워주게 되었는데 어버이같이 인자한 사람을 위한 비석이라고 하였다.

이렇듯 자인고비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자선사업가의 대표적인 표상이다.
비롯 어렵게 돈을 벌었지만 그 돈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근원은 사회에서 벌은 것이기때문에 사회환원을 생각하고 그것을 극적으로 실천한 인물,
그분이 조륵이다.

인터넷이나 여러 책들을 보면 자린고비에 대해 부쩍이나 많이도 나옵니다.
그러나 이 고사성어의 진실한 뜻은 절약정신에 의거한 사회환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실천하는 곳은 거의 없다고 생각합니다.
진실이 어떻든간에 현대에 와서 이렇게 고착되었다고 막쓰는 것을 나무라는 것도 잘못된 것이지만
이렇게 진실이 왜곡이 되었는 것도 알면서 그냥 넘어가는 것도 아쉬운것이 있어 이렇게 글을 남깁니다.

요즘은 경제에 관념에 대한 책도 많이 나오고, 주식이니 부동산이니 환테크니 하는 돈버는 책은 불티나게 팔리는 요즘,
돈을 왜 버는지, 어떻게 써야 하는지 에 대해서 나오는 책도 드물고 찾는 이도 없는 이 시대에
조륵에 대한 이분의 실천적인 사회봉헌에 다시끔 내 자신을 되돌아 보는 계기가 되었고, 이 글을 보시는 분도 한번 생각해 보시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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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효과 이론

이전/지혜의 생각 2008. 12. 17. 00:34
다원적무지(多元的無知)Pluralistic Ignorance Theory
 - 다수의 의견이나 소수의 의견이 비정상적인 현상으로 인해 소수의 의견이나 다수의 의견처럼 비춰져 인식하는 사회현상 (지역감정. 사회여론형성)

침묵의 나선: 매스 커뮤니케이션효과에 관한 소위 강효과이론(the powerful effects theories)의 하나로, 이 학설에 의하면, 인간들은 자신의 의견이 사회적으로 우세하고 지배적인 여론과 일치되면 그것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며 그렇지 않으면 침묵을 지키는 성향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매스 미디어는 지배적인 여론을 형성하고 전파시키는 데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것이 곧 이론의 요지이다. 
좀더 자세한 참고 상황 < 네이버 카폐 <= 참조 >

원인 : 계층간이나 지역간의 대화부재나 대화에 대한 논점의 차이에 대한 서로의 이해부족으로 인해 생기는 생각의 괴리, 충분한 대화도 없는 상태에서의 상대방에 대한 고정적이고 객관적인 관점에서 대충 어림짐작해서 이해해 버리는데서 생기는 생각의 단순화에 따른 부작용, 전체 구성원간의 정확한 토론에 대한 부재와 정확한 소통에 대한 부재, 세력간의 암투에 대하여 생기는 불신임과 몰이해..... 여론조작


대책 : 인터넷과 같은 비공간적이로 비시간적이며 비계층간의 영역이 확보되어야 함...

조건 : 익명성보다는 실명제로써 발언에 대한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문제에 대한 배려함을 동반한 책임적 의무와 동시에 정치적이면서도 사회에 대한 도발적인 발언에 대해서도 어느정도 용납을 포괄적인 허용을 가지는 사회적 융합이 필요...

결국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인것과 같이...
성숙한 사회가 성숙한 개인을 탄생시킬것이냐.
성숙한 개인들이 성숙한 사회를 만들것이냐 문제인것 같음...

어떠한 힘있는 개인들의 발언이 힘없고 암묵적인것에 그냥 동조하는 다수를 지배하는 사회는 전체주의적이고 비상식적인 사회로 가는 보기에는 안정적일지라도 인간적인 문화 발전과 거리가 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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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대해서

이전/지혜의 생각 2008. 7. 24. 14:40

가장 많이 산 사람은 가장 오래 산 사람이 아니라, 가장 많이 생을 느낀 사람이다.


-루소- 에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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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적인 생활..

이전/지혜의 생각 2008. 4. 4. 16:55
내적인 생활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은 환경의 노예이다.
-아미엘


ㄴ나는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내적생활이라고 부를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고자 한다.


요즘 들어서 생각하고 느끼는 것이 내가 일에 너무 치여서 지내고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한 동안 바쁜 와중에 부모님 컴퓨터 설치해서 가르쳐 드리고 몇달동안 주식에 신경을 동시에 쓰고 있으니 심신이 죽을 지경이 되었다.

그래서 간만에 시간이 어제 나서 컴퓨터로 불명의 명곡 이라는 프로그램을 몰아쳐서 몇개를 보았다. 그러니 조금은 피로가 풀렸지만 그래도 피곤은 가시지 않았다.

그러자 갑자기 느껴버렸다.

난 지금 몸이 불었지만 돈이 몇천을 움직이며 투자를 하고 있지만 내 마음은 갸날프고 빈곤에 허덕이면서 자유를 갈망하고 있다고, 이러한 이유는 최근에 주식투자한다고 너무 맘에 메마른 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이 크다.

제대로 된책도 안읽고 오로지 주식연구에만 허덕이고 일에 바빠서 사람 만나지도 않고 정서가 메마른 생활을 한 몇달동안 한것 같다.

그러다가 갑자기 내가 감정이 메말라 버렸다는 것을 느꼈다.

이제 나는 반성한다.
나는 경제적인 인간이지만 정서적인 인간이고 행복하기 위한 인간이기때문에  행복을 찾아 살아 갈련다.

주식을 할때 나는 행복하기 위해 이것을 한다고 동기를 가졌었는데
이제 내가 한도안 수익률게임에 눈이 멀어서 이것을 잠시 잊었나 보다....

잠시 주식에 잠수를 타야 겠다.

그리고 다시 새벽에 일어나고 책을 읽고 오디오 책을 다시 들어야 겠다.
또한 수영이나 배드민턴이나 다시 운동을 해야 겠다는 각오가 생긴다.
운동을 안하다 보니 스트레스에 민감해졌기 때문이다.
심신이 고달플때 다시 가족이 생각나기도 한다.

나는 행복하기 위한 산다는 것을 다시 생각하는 하루가 되었다.
이 각오를 계속 유지하면서 살고 싶다.
무엇이든 풍요롭게 살고 너그럽게 살고 싶다.
어차피 죽는거 안달하면서 죽고 싶지 않고 오로지 행복하게 살다가 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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