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후에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메모

그 책에 대해서 생각을 하고 비판할 것을 찾고 그것을 제대로 정리하여
이렇게 블로그로 글을 남기거나 글을 종이에 쓰거나 아니면 토론회에서 적극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 하고 남의 비판을 수긍하는 적극적인 행동을 나타내는 것이다.

정적인 독서에서 마무리는 동적인 행동으로 끝나야 하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책이더라도 사람의 기억은 무한하지만 유한한 존재여서 그 순간에는 독서를 마쳤다는 일시적인 기분으로 모든 지혜를 얻은 것과 같지만 조금만 지나면 내용은 모호해지고 자신이 얻은 것에 대한 망설임이 밀려오게 된다.
그래서 다시 한번 읽어 보지만 다시금 내용은 모호해지곤 한다.

나도 이러한 반복적인 악순환에서 한동안 헤메다가 최근에 내가 얻은 것!
그것은  내가 본 견지에서 그 책을 가장 그나마 이해를 하면서 나중에 좀더 나은 생각을 남기고 발전하고 싶다면 3단계를 항시 유지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

1단계가 항시 책을 읽으면서 메모를 하거나 자신의 생각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2단계가 yes24의 서평난이나 토론회에서 자신의 생각을 검증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3단계가 이러한 검증 후에 다시금 책을 읽고 나서 종합적인 그 책에 대한 견지을 평해야 하는 것이다.

1단계에서 주의 해야 할점은 항시 책을 1번을 읽고나서 책의 값어치를 판단하고 나서 종합적인 판단에서 다시끔 읽을만한 책을 발견했을때 그때부터 메모를 해야 한다는 점이다.
처음 읽을때부터 메모를 적고 생각을 표현하는 것은 전체적인 것을 아직 모르는 상태에서 부분적인것만을 읽고 아직 모르는  전체적인것을 판단하는 오류를 범하기 쉽기 때문이고,
 또한 내 생각에 젖어서 메모를 중간중간 쓰다보면 책을 읽는 흐름이 끊기기 때문에,
 1번은 그냥 통독을하고나서 메모를 써야 한다는 것을 알수 있었다.

또한 많은 책을 읽다보면 부분적으로 좋은 부분도 있겠지만 다 읽고보면 그 부분적인것이 전체적으로 어긋나는 부분도 생기기게 되었으므로 항시 통독한 후에 메모를 하는 것 은 반드시 지켜야할 주의사항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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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우리는 고전을 항시 읽어한다는것에 동의를 하고 실제로는 서울대 추천 인문고전50선과 같이 인류 역사를 빛낸 고전을 항시  읽고자 하고 실제로 다는 읽지는 못하더라도 한번은 읽어야 한다고 생각을 한다.
즉 고전이 성서와 같이 무엇이든 진리인것 같은 착각에 읽기전에는 어느정도 부담감을 안고 읽기 시작을 한다.
그러나 실제로 고전에 속한 철학책이라든지 사상책들을 읽다보면 현시대에 안맞는 진부한 사상이 의외로 많음을 알수 있다.
받아들이는 내가 속한 시대가 변하고 내가 처한 환경이 다르고 나의 남녀노소에 따른 그 생각의 견지가 다르고
또한 고전이 지어진 저자의 한계성이 반드시 있기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또한 그 차이의 한계성을 가늠하지 못한다면  독자의 혼자 생각만으로 옥석을 구분하고 또 현 자신에게 필요한 부분을 얻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울수 있을 것이다.
또한 어떤 것은 참과 옳지 않음을 구분하기에  문맥상으로 모호하여, 
동시에 공존해야 할것도 있어서 딱 부러지게 구분하여 내가 받아 들이는 것에 많은 애로사항이 있음이 있다.
즉 사상에서도 인간세상과 같이 흑백이 딱부러지게 선악이 있는 것이 아니라 선한자가 가끔씩 법도 어기고 악인이라고 생각되어지는 인간도 어느 한부분에서는 선량한 시민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많은 것이 실제 인간세상인것 처럼

독서에서 얻는 지식도  그러한것과 같은지라 그것을 골라서 적당히 자신의 것으로 재해석하는 것도 일반적으로 지식을 습득하는 것보다  휠씬 더 중요하겠다 할수 있다.
극단적인 말로 독서도 그 사람의 궁합이 맞아야 도움이 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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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저자와 나와의 시대와 공간을 초월한 대화이다.
책을 읽으면서 자신이 얻고자 하는 지식을 얻는 다면 그것 만큼 신나고 즐거운 일도 없다.
또한 나와 다른 견지의 저자을 만나면 비판을 하면서 내가 잘못 생각하지 않았나 하는 자아비판을 해보기도 하기에 항시 긴장을 늦출수가 없기도 한다.
그러나 상방간의 대화에서 차칫 중립을 유지하면 저자를 비판하고 나의 잘못된 해석을 지적해 줄 제3자가 없다면 또한 그것 역시 잘못된 독서법이라 올바른 독서에 어긋난다.

어떤 지식을 배움에 일방적으로 배우는 것도 있거니와
어떤 생각에 대해서 굳건한 의지와 입장을 가지고 배우는 것도 중요하다.
즉 중심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중심이 너무 굳건하고 변하지 않는 다면 그것또한 썩기 마련이다.
자신의 껍질이 있어야 달걀처럼 노른자와 흰자를 보존하고 그곳에서 올바른 생명체가 생기기 마련이다.
그러나 병아리가 생겼어도 계속 그 달걀의 껍질에 갇혀 있다면 그 또한 어미닭이 될 기회를 놓치게 되면 그곳에서 자신의 만족만으로 머물다 죽어 썩게 될뿐이다.
자신이라는 한계의 껍질을 깨고 나와야 또다른 생각을 다른이에게 전파를 할수 있는 어미닭이 될수 있기에 자신을 깨고 나오는 노력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 노력이 생각하고 메모하고 의견을 나누고 비판하고 비판을 듣고 그리고나서 다시 생각을 정리 하는 것!!

이 모든 행동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졌을때 비로서 남에게 도움이 되는 지식인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물론 이 모든 3단계의 행동이 시간이 다소 많이 걸리는 방법이다.
또한 학습이나 배움이 낮은 사람은 오히려 도움이 안되는 방법이다.
그렇지만 어느정도 자신이 단계에 도달하고 책들이 진부하다고 생각이 되고 내가 많이 안다고 착각이 될 경지에 오른 사람은 자신의 겸허함을 찾아줄 최고의 방법이다.

즉 다른 나보다 앞선이에게 까이는 것이다.
그러면 나는 다시 겸허해 지고 또다른 고수들에게 자극을 받아 다시끔 그보다 나은 경지를 향해 내 자신을 가다듬는다.
마치 무협지에서 강호의 고수가 되기 위해서는 다른문파에 찾아가서 자신의 무예를 과시하고 부족하다면 다시 훗날을 기약하며 뼈를 깍는 고통으로 다시 무공을 익히는 것과 같이
독서와 학습은 이러한 자극이 없다면 사실상 재미가 없을뿐더러 발전도 더디기만 할것이다.
그러기에 자신을 강호에 내 던져야 한다.
비록 내가 잘못된 생각이 드러나 대중이나 지인들에게 어리석다는 조롱을 당할지라도 다음을 기약하고 도약하기 위해서는 그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우리는 그 고통후의 기쁨도 안다.
 그 고통은 잠시라는 것도 안다.

그러면 무엇을 망설이는 가?
잠시만 쪽팔리면 된다.
좀 더 적극적으로 내 자신을 깨자.
그러고 좀더 내 자신을 깬 만큼 그것보다 더큰 껍질을 만들면된다.
이번에는 달걀만한 것이 아니라 닭장만한것을 만들고
또 다음에는 농장만한것을 만들면 되고
나중에는 초원만한 것에 나는 뛰어 놀면 되는 것이다.
즉 나는 세계에 내 자신을 맡기는 것이다.


내 자신을 대중화 하라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대중속에서 내 자신을 우뚝 세우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그렇다고 대중속에 있다고 내자신의 껍질이 너무 얇아서 자기 정체성의 혼란이 있어서도 곤란하다.
껍질은 자신을 지키기에 자신의 중심을 유지하기에 충분할 만큼 튼튼하면 된다.
언제든지 깰수 있고 그동안 보호할수 있는 만큼의 껍질..
그것을 만드는 것은 말처럼 쉬운것도 아니고 그 두께와 크기는 그 사람의 남녀노소와 같은 외형적인 요소 뿐만 아니라 내면적인 성격에 따라 천차만별이기때문에 쉽사리 정의하기도 불가능하다.

폭풍속에서 등대를 찾는 배와 같이
나의 지식을 향해 다가올 사람들이 위해
내 자신을 세월과 격랑의 시대에서 굳건한 사상을
스스로 확립해 나가는 것!

그것이 궁극적으로 독서를 하는 최후의 목적이 아닐까?
나만을 위해서 존재하기보다는 작게는 내 자식과 가족을 위해
크게는 조직과 사회를 위해 내 배운 지식을 나누는 것이 독서를 하는 최종 목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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