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마란 ?

카르마의 법칙은요...
카르마(業)는 행위를 의미하는데 크게 보아 두 종류가 있다.

첫째, 괴로움을 초래하는 카르마; 평범한 존재의 행위.
여섯 세계(六道)윤회의 원인이 된다.

둘째, 행복을 부른는 카르마; 성자의 행위, 지옥, 굶주린 귀신, 동물의 세계에 결코 태어나지 않을 뿐 아니라, 윤회의 법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삶을 즐길 수 있다.

1) 괴로움을 초래하는 카르마(有漏業)


2) 행복을 부르는 카르마(無漏業)

다음의 예(例)는 행복을 부르는 카르마의 생성 과정이다. 어떤 사람이 한 마리의 새를 죽이려는 광경을 보게 될 때, 측은한 느낌이 우러난다. 그 순간 '저 가련한 목숨을 구해야겠다' 라고 생각한다면, 바로 그때 행복을 부르는 정신적인 카르마가 움직인 것이다. 그것은 의식의 흐름에 바람직한 인상을 새긴다. 그리고 그 의식이 몸이나 말의 행위로 구체화 될 경우, 새는 목숨을 건지고 그의 자비로운 카르마는 넓고 깊어진다. 그것이 바로 자신과 남의 행복인 것이다.

카르마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첫째는 개인적인 카르마로써 한 사람에 의해 창조되고 그 결과도 그 자신이 겪는 것이고,
둘째는 사회적인 카르마(共業)로 비슷한 환경에 있는 한 무리의 사람들에 의해 공동으로 심어지고, 그 결실도 다같이 거두는 것을 말한다. 바로 숙명적으로 묶이어 함께 울고 웃는 공동운명체를 구성하는 요인이다.


다음과 같은 카르마는 보답의 무게가 특별하다.
a. 부모님, 스승, 보디삿트바(보살), 병자나 곤경에 처한 사람에게 행한 행위의 보답은 보통보다 정도가 크다.
b. 존경심을 갖고 행한 카르마의 보답이 무겁다.
c. 강한 증오나 탐욕은 카르마의 영향력을 진폭시킨다.
d. 행위할 때의 태도 여하에 따라 그 보답이 영향을 받는다.


카르마는 세 가지 독(三毒:탐욕, 성냄, 어리석음)으로부터 일어난다. 만일 어떤 사람이 재물에 집착하여 남의 것을 훔쳤다면 그것은 탐욕의 번뇌에서 비롯된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이 화를 참지 못하고 살생을 했다면, 그것은 성냄의 번뇌로 말미암은 행위다. 그때 그는 죽이는 편이 이롭겠다라고 생각했을 것이므로 이는 동시에 어리석음의 번뇌로 말미암은 셈이다. 어리석음 중 에서도 가장 큰 어리석음은 "나"가 본질적으로 존재한다고 믿는 어리석음이다. 그것은 실제로 모든 번뇌의 뿌리이다.

다시 카르마는 다음의 둘로 구분한다.
a. 뭇생명을 여섯 세계 가운데 한 곳으로 "집어 던지는" 카르마.
a. 같은 세계에서 뭇생명의 생긴 모습과 생활환경을 "차별지우는" 카르마.

둘은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어울린다.

카르마의 또 다른 특성들을 나열해 보면 다음과 같다.

a. 일부러 짓지 않은 몸과 말의 행위.
b. 그저 마음으로만 지은 행위.
c. 마음으로 짓고 행동에 옮긴 것.
d. 결실이 현재의 생(生)에 맺히는 강력한 카르마.
e. 다음 생에 보답받는 카르마.
f. 다음 다음 생, 혹은 그 다음 생에 보답 받는 카르마.
g. 카르마 법칙의 필연성: 행위의 결과는 어김없이 닥친다.
h. 작은 행위로 큰 보답을 받을 수 있다.

한 젊은 여인이 순수한 마음으로 부처님께 공양을 올렸다. 붓다는 사람들에게, 그 여인이 이 행위의 결과로 아무 때 아무 곳에서 벽지불의 깨달음을 얻을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 여인의 남편은 그러나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그 정도의 작은 행위로 그토록 큰 보답을 받는다는 것이 납득되지 않았던 까닭이다.붓다께서 미소지으며 설명했다.

"한 알의 씨앗이 자라서 커다란 나무가 되듯이,카르마의 보답 역시 헤아릴 수 없다."

i. 뿌린 카르마의 씨앗이 없으면 거둘 열매도 없다.
앞에서 얘기에서 덕 높은 비구니들의 음식 시중들던 여인네처럼.
j. 카르마의 씨앗은 결코 부패하지 않는다.
죽는 듯이 잠자고 있다가도, 적합한 때를 만나면 언제고 싹을 틔운다. 다르마의 수행에 의해서 카르마의 잠재력을 완전히 제거 할 경우를 제외하고.
때때로 이런 생각이 든다. 붓다는 당신의 무한한 자비심으로써 뭇생명의 고통스런 카르마를 제거해 주실 수는 없을까? 실제로 뭇생명들이 괴로움을 초래하는 카르마의 인상을 저장해 두고 있는 것은 자기 자신의 잠재의식이며, 인과응보의 카르마 법칙은 바로 그 스스로의 의지에 의해 좌우된다. 자비심에 찬 붓다의 가르침은 결국 인간 자신이 자신의 카르마를 정화하는 방법을 제시할 뿐, 성과가 있고 없고는 단연히 개개인의 자외적인 노력 여하에 달려 있는 것이다.
환자에 대한 커다란 사랑을 갖고 최선의 처방을 내리는 것으로 훌륭한 의원(醫阮)의 임무는 끝난다. 처방대로 치료를 받고 안받고는 환자의 마음이다. 만일 붓다의 자비심 만으로도 뭇 생명에게 완전한 자유를 줄 수 있다면, 윤회는 벌써 까마득한 옛날에 종식 되었을 것이다. 붓다의 사랑은 넓고 가이 없다. 태양이 온 세상을 두루 비추듯이, 붓다의 사랑은 뭇생명의 마음자리를 평등하게 밝힌다. 그러나 뚜껑 덮인 단지 안에서 어떻게 햇빛을 쬘 수 있겠는가?

카르마의 인상이 뚜렷할 경우와, 붓다에 대한 믿음과 다르마의 깊은 수행으로 말미암은 큰 덕성(德性)과 결부되어 있지 않을 경우에는 과보를 면하기가 어렵다. 설사 결부되어 있다고 해도 쉽사 리 상황을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요컨대, 비교적 인상이 약한 카르마는 붓다에 대한 믿음과 다르마의 수행력 등에 의하여 상당한 영향을 받는다. 가령 인간의 수명은 지난 세상의 카르마에 의해 결정되지만, 이 생에서의 악행때문에 급작스런 죽음을 당할 수가 있다. 바로 이러한 경우에 붓다의 자비심이 힘을 발휘한다.
붓다를 신앙하고 다르마를 깊이 수행하여 급살(急殺)의 원인을 미리 제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수명은 기름 등잔불과 같다. 기름이 고갈되던지, 거센 바람이라도 몰아치면 꺼져버리지 마련이다. 붓다는 결국 바람막이 역활을 하실 따름이다.
이처럼 카르마는 위험한 존재다. 카르마를 유발하는 번뇌의 뿌리를 뽑아 버리려면 명상을 해야 한다. 번뇌의 본성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차적인 의식(the primary consciousness)과 특히 이차적인 의식(the secondary consciousness)에 대해 정확히 알 필요가 있다. 이차적인 의식은 51가지의 정신적 요인(caitta)으로 나뉘는데, 아상가(Asanga, 無着)의 아비달마집론(Abhidharma-samu ccaya)에 잘 설명되어 있다. 그것을 바르게 공부하면 모든 행위가 각각 선한지 악한지, 무슨 정신적 요인에 바탕을 두는지를 잘 이 해할 수 있다. 무릇 카르마는 매우 파악하기 어려운 개념이다. 중요한 것은 다르마의 여러가지 측면을 두루 아는 일이다. 뭇생명들 의 다양한 생활상태와 경험이 단순히 한 가지 카르마의 결과만은 아님을 이해하는 일이다. 카르마의 법칙과 그 결실은, 콩심은 데 콩 나는 식으로 명확하게 규정되지 않고, 매우 복잡하게 뒤엉켜있다.
현상(現象)을 이해하는 방법에는 감각기관을 통한 직접지각(直 接知覺 : 現量), 수냐타를 탐구할 때 사용하는 논리적인 분석과 추리(推理,比量), 붓다의 지혜(智慧)를 신뢰하여 그 말씀을 받아 들임 등의 세 가지가 있는데 카르마는 세번째 방법에 의해서 이해한다. 공작새의 깃털처럼 현란한 현상 세계의 모든 원인은 오직 붓다만이 추적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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