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계급, 부와 권력을 재편하다

stage5 - 논고/사업힌트 2006. 9. 26. 22:08
출처 블로그 > Shining Developer ™
원본 http://blog.naver.com/oyukihana/60028951649
창조계급, 부와 권력을 재편하다

김국현(IT평론가)   2006/09/19
현실의 물리적 제약에서 자유롭기에 무엇이든 해 볼 수 있는 네트워크 위의 이상계. 알고 보니 이상계란, 싸이와 블로그에 의하자면, 현실계를 흡수하고 미화하며 팽창하는 창조 공간이었다. 우리는 그 곳에 우리의 현실을 뱉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이상계에 삶을 담는 일을 ‘라이프 캐싱(Life Caching)’이라 한다. 현실계에서 '탈물질화'한 정보들은 이상의 대지에 기억의 은닉처(캐시, cache)를 만들어 놓고 있었던 것.

라이프 캐싱을 즐기는 세대, 제너레이션 C(Creativity, Content, Caching). 창조력을 지니고 컨텐츠를 만들어 이상계에 캐싱을 시도하는 세대를 뜻한다. 리차드 플로리다(Richard Florida)가 "The Rise of The Creative Class"라는 책에서 ‘창조 계급’이라는 말로 표현한 세대적 움직임과 결국은 같은 집단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런 이름까지 생겨난 것 보면 분명히 특이할 만한 집단, 세대, 계급이 등장하고 있음을 많은 이들이 느끼고 있는 것이다. 웹2.0의 변화란 '디지털화된 프로슈머', 즉 '이상계에서 생산을 하는 소비자'의 등장에 있다. 지금까지 고객이란 소비자, 즉 수용자였다. 막말로 주는 대로 받는 이들이었던 것. 그러나 이제 생산성 소비자들이 지금까지 기득권들이 쥐고 있던 생산 권력을 해방시켜 간다.

현실계에서는 생산력을 개인이 지니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현실의 제조업을 개인이 시뮬레이션 하기는 힘든 것이다. 그래서 피드백 정도나 제공하는 프로슈머로 만족해야 했다. 그러나 이상계라면 그곳의 가치는 개인이 생산할 수 있다. 즉 처음부터 끝까지 컨텐츠의 완전 제조가 가능한 곳이 바로 이상계. 문자 정보를 넘어서 음악과 영화와 같은 본격적인 시청각형 예술 컨텐츠조차 개인이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어떻게 그러한 일이 가능할까? 그 해답은 이상계의 본질 '디지털 네트워크'에 있다.

① 네트워크: 쌍방향 직접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이상계 플랫폼의 완성
지금까지 우리는 가치의 분석과 창조를 교수, 기자, 컨설턴트와 같은 권위에 의존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1%의 창조자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개 블로그에 올라 오는 포스팅 중에는 이들도 무릎을 꿇게 만들만한 촌철살인의 알짜 들이 등장하곤 한다. 사람들이 만들어 낸 모든 것 중 상위 1%의 창조물과 상위 1%의 창조자가 만들어 내는 모든 창조물 중 어느 것이 재미 있을까?

이상계를 배회하다 보면 "도대체, 이 사람은 누구인가?"라고 중얼거리게 될 때가 있다. 이상계가 제공한 '쌍방향 직접 소통력'을 믿고 지금까지 재야에 묻혀 있던 엄청난 양의 가치들이 서로에게 직접 소통을 시작한 덕이다.

블로그란 그 소통력을 가능하게 한 대표적 '플랫폼' 중의 하나다. 플랫폼은 우리 행위의 틀이 된다. 게시판에서 사람들은 게시판에 맞는 행동을 한다. 익명의 댓글이 달리는 곳에는 그 분위기에 걸맞은 댓글이 달린다. 그리고 블로그에는 블로그에 맞는 포스팅이 올라 온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1%의 컨텐츠를 뽑아 내어 공개하고 싶게 만드는 구조가 완성된 것이고, 여기에 제네레이션 C의 첫 번째 배후가 있다.

② 디지털: 장난감이 아닌 창조의 도구, 가제트의 힘
우리는 적어도 한 두 개의 CPU를 늘 몸에 지니고 다닌다. 핸드폰의 MSM칩도 사실상 CPU이고, 디카, MP3, PDA, PMP 등 '어른들의 장난감'은 하나 같이 CPU를 품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이 CPU의 도움을 받아 이상계를 위한 디지털 컨텐츠를 만들어 낸다.

물론 DSLR을 가졌다고 앙리 까르띠에 브레쏭이 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날마다의 사진을 암실이 아닌 컴퓨터 앞에서 편하게 연구하고, 생각하지도 않았던 사진 작가의 꿈을 키우게 되기도 한다. 디지털은 우리에게 가능성을 주는 것이다. 디지털은 우리에게 꿈을 꾸게 하는 것이다.

대중화된 디지털 생산 도구는 이제 모두의 손에 쥐어졌다. 디지털 가제트는 의인화된 지름신 덕에 21세기의 문방사우라 불러도 좋을 만큼 가까워졌다. 그리고 이 '디지털의 힘'이 '네트워크의 힘'과 만나는 순간, 창조 공간으로서의 이상계, 그리고 그 가능성을 본 창조 계급, 제너레이션 C가 등장한다.

우리는 누구나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건전한 '승인 욕구'를 지니고 있다. 산업계에서는 공산품에 제조담당자 이름을 명기하곤 한다. 즉 뛰어난 기술로 제조를 담당한 명예를 개인에게 돌리는 것이다. 담당자 본인에게는 큰 격려가 된다고 한다. 이름을 알리고 싶다. 튀고 싶다. 내 실력을 보여주고 싶다. 이런 일종의 현시욕은 강력한 '창조의 인센티브'가 된다.

내가 쓴 글이 포스팅되어 모두에게 읽히는 쾌감, 내가 찍은 한 장의 사진을 모두와 공유하는 쾌감은 다른 차원의 지적 쾌감으로 이어진다. 내가 만든 무엇이 세상에 소개되어 좋던 나쁘던 반응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이 창작의 동기 부여를 끊임없이 일으키는 것이다. 나의 경험을 공유하고, 타인의 경험에 공감하는 '체험'이 인간의 본능을 자극한 것이다.

싸이의 성공도, 플릭커(flickr.com)의 성공도 다 이 자극에 기인한다. 디카로 찍어 업로드한다는, 현상과 인화와 기다림이라는 현실의 제약이 제거된, 디지털 생산 활동의 네트워크화는 '이상계의 현실 흡수력'을 여실히 보여준다. 지금의 아마추어 사진가는 과거의 프로 사진가 못지 않은 '양'의 사진을 찍어댄다. 2GB의 SD 메모리 카드가 꽉 찰 동안 DSLR은 필름 한 번 갈아 끼우지 않고 2000장의 사진을 연속적으로 찰칵거린다. 절대적인 양적 풍요 속에 우연히 프로급의 한 장 찍힐 수 있는 법이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1%의 컨텐츠를 뽑아 내어 공개하고 싶게 만드는 구조'에 '디지털 문방사우의 가공할 생산 효율'이 결합된 것. 여기에 웹 2.0적 혁신의 비결이 있다.

최근 이 결합은 자본의 예술인 영상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유튜브(youtube.com)라는 구조 덕에 그리고 동영상 기능을 갖춘 디카와 핸드폰 덕에 누구라도 지금 당장 입봉할 수 있다. 물론 상업 영화의 스탭 들이 보기엔 웃긴 일일지 모른다. 그러나 여러분 주위의 오브제와 여러분 주위의 출연진만으로 영화를 촬영, '세계'를 향해 어필할 수 있는 세상, 그런 세상의 한가운데에 우리는 지금 서 있다.

스스로 방송 보도를 할 수도 있다. 부시 대통령이 스탠포드 대학 방문시 야유 받는 시위 동영상을 스탠포드 신입생이 유튜브에 업로드해 두 달 만에 10만 번 이상의 조회와 2천5백여 건의 댓글을 받았다. 이 곳에 하루에 올라 오는 영상은 4만 편 이상. 전세계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방송이라면, 그리고 화제가 될 만한 영상물이라면, 그 누가 만들었건 지금 이상계로 몰리고 있는 것이다. 이는 명백한 정보 생산 기득권 붕괴가 일어나는 신호다.

지금까지는 대규모 전달을 위한 장치와 이를 운영하기 위한 장치가 없으면 생산이란 힘든 일이었다. 정보 생산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정보의 탈물질화가 가속화되는 작금의 상황에서는 이제 의지만 있다면 그 주체의 대소에 상관 없이 최소한의 정보 생산력은 확보가 가능해진 것이다. 그것이 비록 최소한이라 하더라도 사건이 생길 수 있는 시작을 마련한다는 점에서 개인과 소수에게는 꿈을 주는 자극이 된다.

음악은 또 어떠한가? 음악도 미디(MIDI)에 의한 신디사이저 음악 이래, QWERTY와 건반, 이 두 가지 키보드만 있으면, 그리고 Acid Pro와 같은 적절한 프로그램만 있으면 음악을 전공하지 않아도 샘플링을 따 비트를 짜고 작곡을 할 수 있다. 디지털의 힘에 의해 예술혼이 살아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음악에 곁들여, 아니 자신의 음악이 없더라도 입담만 있으면 자신의 토크쇼를 만들 수도 있다. 예전에는 잘 만든 토크쇼 기껏 열심히 녹음해 봐야, 짝궁이 들어 주면 행복했다. 그러나 이제는 '포드캐스팅'이라는 구조에 의해, 전세계 MP3플레이어들에게 구독될 수 있다. 그야말로 끼만 있다면 뜨는 것은 시간 문제인 시대가 오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창조 행위와 표현 행위가 실질 경제적 이익으로 돌아 오는 시대다. 창조 행위가 자신의 블로그에 담을 컨텐츠의 질을 높이는 행위로 이어진다면, 자신의 블로그의 조회수가 올라가고 페이지에 곁들인 광고 수입이 덩달아 올라 가기도 한다. 즉 다른 의미에서 자극이 될 경제적 동기를 부여하는 구조가 이상계에는 마련된 것이다.

내 블로그의 일정공간을 구글 ‘애드센스’와 같은 광고대행사에 광고판으로 제공하면, 내 블로그와 어울리는 광고가 수시로 바뀌며 게재되고, 수익이 적립된다. 즉 양질의 컨텐츠만 있으면 용돈 정도는 벌어 쓸 수 있다. 누구나 창조를 할 수 있고, 누구나 미디어가 될 수 있고, 이를 통해 누구나 꿈을 꾸고 또 수익을 얻을 수 있는 곳, 그 곳이 이상계다.

'부와 권력의 재편'이 일어난다는 말 이외에 이 순환을 어찌 달리 표현할 수 있을까? 사소한 징후에 오버한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는 장기간에 걸쳐 일어날 지금 문명사적 대전환의 첫 페이지에 서 있을 뿐이다. 물질 중심 사회에서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와 권력의 재구성이 지금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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