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생각하는 독서의 올바른 방향성

stage7 - Action/reading 2008. 11. 24. 00:36
우선 제목은 "내가 생각하기에 인정하는 독서권수" 라고 확실히 정정하고 싶다.

즉 보통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독서의 개념을 나는 인정하고 싶지가 않다는 것이다.
이른바 독서의 목적을 내가 몇권의 책을 읽었으니 나는 그만큼의 교양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독서방법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얼마전까지 나도 이른바 다독의 착각에 빠져있었다.
무조건 많이 읽어야 하고 다양한 종류의 독서에서 많은 독서를 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약 15년간의 독서( 중간에 5년간의 휴지기가 있었다.)중에 느낀 것은 옛 성현들이 말한 다독에서 다독이라 무조건 많은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좋은 양서를 많이 읽어라는 것! 이것임을 알았다.

즉 인문고전이라는 이른바 필독서, 이러한 책들은 자주 많이 읽으라는 것!
(또 하나의 오류에 빠질수 있는데 한권의 양서 일지라도 몇번씩 읽으라는 말)

도덕경이라든지 금강경, 주역, 플라톤의 국가, 유토피아, 군주론, 종의 기원, 자본론, 국부론 등 이러한 양서를 기초라 하여 (이 것들은 반드시 읽어야 하는 이른바 독서의 핵심이다.) 사고의 영역을 넓혀가는 것이 이른바 올바른 독서임을 알았다.

몇년전에 누구하나라도 이른바를 알려주는 사람도 없어거니야 내가 알아본봐도 없다.
(사실 청년시절에는 교육부에서 추천도서라든지 서울대에서 말하는 필독서라는 것에 거부감을 느껴 일부러 안 읽은 것도 있다 ==> 후회한다)

비로서 내가 읽은 수백권의 책들이 잡서이며, 이러한 만고불변의 진리에 나도 예외적일수 없다는 사실을 뼈져리게 느끼게 해주는 각성이 있었다.

즉 아무리 변두리 지식이나 지혜를 안다고 할지라도 인류의 큰 흐름이 되는 불교나 기독교, 힌두교, 노장사상, 플라톤류의 철학과 니체와 마르크스등의 사상을 알지 못하면 임시변통의 지식은 얻을수 있으나 지속적이고 항구적인 지식의 원류에는 접근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다시 말하자면 스티븐코비 박사가 말하는 계획의 유효성을 독서법에도 적용할수가 있다는 것이다.
시간은 한정되어 있는데 잡일에만 신경을 쓰게 되면 큰일을 못하게 된다는 박사의 말이 독서에 적용된다는 것!

그 것이 무엇이냐면, 노장사상의 무위사상이라든지 서양사상의 큰 핵심인 기독교라든지 철학의 큰원류가 되는 플라톤을 이해하지 않고서 서양의 엘리트 사상을 이해하는 것은 무리라든지. 마르크스를 이해하지 못하고서 자신의 노동의 가치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지 못하다는지...

사상의 기본들을 알지 못하고 이른바 무슨무슨 계발서 라는 개인계발서 라든지 대인관계관려서적, 경제학서적등등...  이러한 개발서들을 수박 겉핡기 식으로 배우게 되거네 지엽적인 지식만을 얻을수가 있다는 말씀..


 즉 , 수백 수천년을 인류가 살아온동안 여러가지 사상이나, 철학자, 종교가 있었지만 그나마 살아 남아 인정받는 동서양의 모든 지식과 지혜의 정수, 이른바 인문고전들을 모르고서 현시대에 임시적으로 사용하고자하는 경제학이라든지 물리학이라든지 대인관계학이라든지 등은 인류의 뿌리와 줄기를 모르고서 그 나무에서 나오는 과실에만 관심을 갖는 근시안적인 오류에 빠지기 쉽다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은 나는 인문고전이라는 누구나 인정하고 추천하기에 주저함이 없는 책들을 읽고 있다.

책의 목적이 단순히 지식 습득이라면 책을 위협할만것들은 많을 것이다.
즉 굳이 책을 읽지 않아도 동영상이라든지 인터넷으로 배운다든지 강연에 참석하여 들으면 된다.

그러나 인문학의 고전이라는 것들은 책뿐이다.
아무리 동영상이 뭐라고 그래도 인터넷에서 뭐라고 하더라도 그 저자의 사람이 몇백년 몇천년전의 사람이기때문에 원전은 책일수 밖에 없고 나머지는 그 책보고 말하는 것밖에는 없다.

그렇다고 책만이 우수한 도구라고 할수는 없다.

단지 내가 20년간을 컴퓨터와 함께 한 경우로 봐서는 아무리 인터넷 컴퓨터 세대라고 하더라도 책이 주는 차분함에서 나오는 생각의 깊이는 EBOOK 이라는 매체는 따라가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외국외서의 PDF파일들을 굳이 프린터하여 책을 만들어 본다.

말이 길어지지만

내가 독서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원칙은 하나다.
내가 이책에서 무엇을 배울수 있는가가 보다는 내가 여기서 어떠한 사유를 얻을수 있는가이다.

배우다는 것은 포괄적이지만 여기서 내가 한정짓고 싶은 것은 단지 지식을 습득한다는 것이다.
인터넷은 인간의 지식에 대한 개념을 바꿨다고 말하고 싶다.

과거 배운사람이라는 개념은 이른바 책을 많이 읽은 사람, 많은 것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봐도 무방한것 같다.
.
전에는 어느 지식인이 말한것은 내가 기억하고 있어야 비로서 원하는 것을 기억하고 활용할수가 있었다.
아니면 알고 있는 사람들을 찾아다녀야 했다.

그러나 인터넷의 발달로 인해 지식의 보편화가 이루어졌다. 수많은 지식인들이 자신의 사이트나 블로그에서 사상을 전파하며 수많은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EBOOK은 수많은 도서관의 대체효과를 가져오고 있으며 이로 인한 시간과 공간의 초월로 인해 굳이 모든 책들을 읽고서 기억하지 않아도 네이버나 구글에서 검색만으로도 자신이 원하는 사상과 지식을 찾을수가 있으므로 해서 지식의 보편화가 이루어지게 된것이다..

그로인해 지식과 지혜의 말은 완전히 분리되게 되었다고 본다.

이제는 알고 있으므로 해서 그 사람을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보지않는다는 뜻이다.
그 말을 비약적으로 말하자면 무조건적인 독서량이 많은 사람이 현시대에는 시대적오류라는 인식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무엇이 중요하냐면 인터넷을 지식의 바다라고 한다면 그 수많은 지식중에서 내가 먹고 나서 영양분이 되고 탈도 나지 않은 지식을 선별하여 습득할수 있는 그러한 지혜를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자면 무엇이 중요하냐면 우선 인간이 살아오면서 인간이 추구하고자하는 것들은 우선 알아야 하며 현실을 알수 있는 여러가지 철학등을 탑재한 인문고전을 배우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간단히 말하자면 인문고전을 배움으로 해서 모든것을 외우는 것이 아니라 지식을 활용하는 지혜를 갖추자는 것이다.

다시 되돌아가서 내가 몇권 읽어네 하는 독서는 더이상 나는 할 생각도 없고 권하지 않는다.

단지 내가 남들에게나 나한테 원하는 것은 내가 무엇을 읽었고 그것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으며 그것이 나에게 어떠한 사유를 하게끔하였는가가 중요하다.

더 깊은 이야기는 나중에 이야기 하기로 하고

단지 지식이 중요하다면 이른바 요약서를 읽으라 권하고 싶다.
어차피 기억은 많은 것을 저장하지 못할바에 그냥 요약에서 나오는 첫째 둘째나 줄긋고 보관하는게 시간상 비용상 더 이익일 것이다.

그러나 수많은 현시대의 변화상에 대한 통찰력을 가지고 싶다며 독서에서 얻을 것은 저자가 어떠한 결과를 얻기 위해 걸어가는 과정들을 조리있게 이해할수 있으며 그것으로 인해 독자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그 것을 책에서 답을 찾으며 그 과정에서의 자신의 오류와 저자의 오류를 찾아가는 소크라테스의 문답법과 같은 방식을 책에서 찾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이제 나의 블로그에서는 이러한 문답법과 같은 류의 독서법으로 내용을 채울것이며 또한 이러한 물음에 독서의 방향을 잡을 것이다.

아무조록 이글은 읽는 블로거들께서는 나의 이러한 발전경향을 예의주시 하기고 올바른 일침을 서슴치 않고 말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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