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약에 대한 나의 단상

우선 나의 어린 시절은 유복하다고 하기 보다는 부족함을 느끼지 못했다.
나에게 큰 욕심이 없었던것도 있었지만 집안이 그런대로 나의 욕구(?)를 들어 줄 만큼은 되는 부를 가지고 있었기에 어린 시절에는 돈에 대한 욕망이라든지 다른 것에 대한 욕심은 없었다.

그러나 군대를 제대하고서 비로서 사회 생활이라는 그 비슷한 것을 할려고 할쯤 나에게도 돈이 필요하기 시작했다.

즉 친구들을 만날때도 부모에게 돈을 한두푼 뜯어서 내기에는 이미 씀씀이가 커진것이다. 몇몇이 이미 돈을 벌고 있었던 시점에서 나도 어느 정도 뒤쳐지는 보조이지만 맞추기 위해서는 나도 나름대로의 돈을 벌어야 했다.

그 때 부터 나에게 비로서 개인적인 욕망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원하는 것이 적든 많든 간에 원하는 것을 가질수가 있다면 욕망은 없는 거나 마찮가지라고 생각이 든다.

그러나 자기 욕심대로 다 할수 없어 자제를 하거나 그 자제를 하지 못해 부작용이 생긴다면 비로서 욕망에 괴로워 하게 된다.

한 동안 나도 총각인 만큼 돈을 그런대로 잘 벌때가 있었다.
그러나 1년에 2500 이나 벌어도 총각이 돈 천만원을 저축하지 못하는 것은 욕망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던 나에게도 있었다.
즉 계획적은 소비가 아니라 그 날의 충동구매가 자주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1달은 내가 쓴 것에 대한 인지는 있지만 1년이 되어 버리면 전체적으로 내가 돈은 쓴것 같은데 뭐가 그렇게 많이 썼는지 기억이 안나고 지나고 보면 그때는 꼭 써야 했던 것들이 돌이켜 볼때 필요 없었던것이 많았던것 같다.

현재에 와서 집값에 돈이 다 들어가고 현재에 실직으로 변변하지 못한 수입으로 살고 있다.
그러나 돈을 모으는 것은 거의 같은 느낌이다.

돈을 많이 벌으면 많이도 저축을 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 저축하는 것은 일정하다.

그래서 돈많으 버는 넘들을 자세히 보면 소비생활은 화려한데 남은 것은 똑 같은것이다.
현시대는 소비가 미덕이며 자기 과시의 상황이라 자신이 그렇게 하지 못하면 아타까운 마음으로 한푼 더 쓰지 못한 마음을 지름신으로 대신 말하기도 하지만 그건 결국은 지름신이 있더라도 돈은 자기가 내야 한다.

그렇다면 굳이 지름신을 댈 필요가 있을까? 죽는 것도 자기가 죽는 것인데 그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종교가 필요한 것과 같이 현실에서 자기 욕망을 지름신등으로 대신하는 것이다.

나도 그러한 때가 있었으니 한동안 컴퓨터에 많이도 질렀다.
지금은 지식 습득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었지만 한동안 매개체인 컴퓨터에 투자를 했던 나는 지금도 후회를 하고 있다.

각설하고 절약을 해서 부자가 되면 좋다.
그러나 절약을 한다고 해서 반드시 부자가 되는 것도 아니고 또한 그 절약이 반드시 善 이라고 할수도 없다.
적절한 소비는 생활의 활욕소라고 하는 것들은 개소리이고 그러한 것때문에 과소비하는 사람들의 변명거리를 제공하는 것이고....

소비도 투자라고 생각하고 써야 하는 것이다.
음식에 대한 소비는 내 몸에 대한 투자이고 책은 내 마음에 대한 투자이며 교제에 대한 교제비는 인간관계에 대한 투자이다.

쓰는 것은 똑같은데 투자라고 굳이 말을 하는 것은 소비에 옥석을 갈릴줄 아는 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1만원 식사에 충분한 것을 괜히 다 먹지도 못하면서 3만원이나 쓰는 사람들이 있다.



writen at
BY Karma7

'stage1 - Karma7 > karma7은 이렇게 생각한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 자신에 대한 평가  (0) 2005.09.17
명절날이 싫다  (1) 2005.09.16
의무와 권리  (0) 2005.07.14
이 놈의 냄비 근성  (0) 2005.07.05
난 어느별 사람?  (0) 2005.07.01

설정

트랙백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