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두개의 자아를 인정하라

상처 입은 사람들이 머리로는 이해하는데 가슴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현실의 이성적 자아 저 안쪽에 '상처 입은 그 순간'의 옛 자아가 고스란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 옛 자아는 지금 나와는 별개의 인격체다. 이해하는 것 지금의 나일 뿐이다. 지금의 내가 자유로워지려면 옛 자아를 달래 주어야 한다.
지금 나는 옛 자아의 어머니인 것이다.
김영아 '아픈 영혼, 책을 만나다 - 김영아의 독서치유 에세이' 중에서 (삼인)
저 책의 주인공처럼 사실 저도 어릴적에 장사를 했던 집안이라 어릴때 기억으로 그렇게 유쾌하거나 따뜻한던 적이 없었던거 같습니다.
성격을 보더라도 그래도 어릴때 부모님과 더 같이 지냈던 동생은 성격이 온화하고 더 밝으니깐요...
 
삶은 자주 우리에게 많은 선택을 하게 합니다.
내가 성공하여 부모님을 잘 모셔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부모님과 대화를 자주하기보다는 좀더 성공하기 위해 뛰어다니거나 공부를 하죠
이건 나만을 위해 그런것이 아니라는 정당성을 부여하면서...
 
위의 주인공의 부모님도 그렇습니다.
먹고 살기 위해 어린 주인공과 더 어린 동생을 집에 두고서 방문을 잠겨놓고 일을 나가셨습니다.
부모님께서는 다 이게 우리가 먹고 살기 위해 그렇다는  당위성을 부여하셨겠죠...
 
이러한 주인공과 같이 피해의 당사자가 느끼는 마음에
 이해심과 섭섭한 마음이 항상 같이 공존하고 있지만
언제나 이 둘은 공존을 하면서도 친해질수 없는  
서로가 서로에게 셋방 더부살이와 같이
화목하게 지내기 보다는 갈등을 유발하는 관계일수 밖에 없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그사람과의 관계가 더욱더 진척이 될수록
처음에 작아 무시해도 될것만같았던 이 작은 섭섭함의 자아는
수면아래에 있었던것뿐, 보이지 않았을뿐,
그 동안 점점 커져왔었고
그 것이 지금 내가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이해심보다는
과거에서 쌓이고 쌓였던, 계속 보이지 않게 커져온 섭섭함이
은연중에 그 균형을 잃고 폭력이나 일탈과 같은 비도덕적이고
자기도 용납을 하지 못하는 비양심적인 행동을 유발한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이야기가 필요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단지 그 당시에 그럴수 밖에는 없었지만
그때문에 상처받은거에 미안하다고.
그 당시에는 스스로 당위성을 부여하고
매몰차게 그렇게 했지만 그땐 너무 미안했었다고
 
진심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직접적인 대면하지 못하고 무심코 그냥 넘기는 그 것들이
나중에 갈등이 오해를 낳고 그것이 서로에게 원수같이 되는 것은
정말 서로가 서로에게, 친한 사이들에게는  너무 어리석인 일인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이것이 너무 현실세계에는 쉽게, 그냥 아주 쉽게
당연하게 넘어가는 부분이 너무도 많아
서로간에 감정이 쌓였던것이 마침내 폭발하고 앙금으로 남아
서로가 대립하고 법정으로까지 가며
죄없는 제3자에게까지도 이유없는 갈등을 유발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사심없는 진심어린 대화
그것이 가족이든 직원과 사장이든
이러한 믿음과 신뢰가 깃든 대화에서
가정의 화목과, 직장의 성공이 시작하는것 같아
이렇게 글을 한번 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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