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상식의 괴리

역사의 의무는
진실과 허위,
확실과 불확실,
의문과 否認(부인)을
분명히 구별하는 것이다.
(요한볼프강 폰 괴테 - 독일의 철학자)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가 알고 있다고 자신하는 것은 무엇에 근거하는가? 이며
내가 알고 있다는 것과 제대로 알아야 할 진실이 다르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겼습니다.
 
우리가 흔히 황희 정승하면 청백리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진실에 대해 얼마나 정확히 알고 있는지요?
 
아직도 동화책이나 교과서류에는 황희 하면 청백리로 가난하게 살고 공명정대했다고 했지만
그건 그 사람의 정치적인것일뿐 실 생활은 다르지만 우리는 아무런 여과없이 그대로 황의는 청백리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역사의 진실과 우리가 실제로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상식에는 커다란 괴리가 있습니다.
 
세종 50권, 12년(1430 경술 / 명 선덕(宣德) 5년) 11월 24일(신유) 3번째기사
사헌부에서 황희의 파면 추방을 건의하니 관직을 파면하다
라는 기록이 있는데 이부분의 주내용은 "그의 사위인 서달(徐達)의 죄를 면하기 위하여 이수강(李守剛)과 곽규(郭珪) 등과 내통하여 죄 없는 사람에게 화를 끼칠 뻔했다가 일이 발각되매, 이수강과 곽규 등이 모두 그 잘못을 자백하였습니다" 하여 황희의 죄를 간하고 그의 관직을 파면하게 됩니다.
그러나 세종께서 그의 능력을 높이사 다시 등용을 하게 되죠..
 
세종 91권, 22년(1440 경신 / 명 정통(正統) 5년) 10월 12일(신사) 4번째기사
에는 자신의 서자인 황중생이 대궐에서 금장식을 훔치다가 발각이 되자  황희는 중생이 자기의 소생이 아니라 하여 아들로 삼지 아니하니, 중생이 드디어 성(姓)을 조(趙)라고 불렀다.
라는 부분이 나옵니다. 평생을 동화책처럼 가난하게 사신분이 관헌의 여종을 첩으로 삼았다?
20평 아파트에 살면서 2집살이 할다면 믿을수 있겠습니까?
부정축재가 아니고서야...
 
세종 40권, 10년(1428 무신 / 명 선덕(善德) 3년) 6월 25일(병오) 1번째기사
박포의 아내라는 사람이 황희의 집에서 몇년을 기거하면서 간통을 했다는 부분이 나옵니다.
그러면서
"황희가 장인 양진(楊震)에게서 노비(奴婢)를 물려 받은 것이 단지 3명뿐이었고, 아버지에게 물려 받은 것도 많지 않았는데, 집안에서 부리는 자와 농막(農幕)에 흩어져 사는 자가 많았다. 정권을 잡은 여러 해 동안에 매관매직하고 형옥(刑獄)을 팔아 〈뇌물을 받았으나,〉 그가 사람들과 더불어 일을 의논하거나 혹은 고문(顧問)에 대답하는 등과 같을 때에는 언사가 온화하고 단아하며, 의논하는 것이 다 사리에 맞아서 조금도 틀리거나 잘못됨이 없으므로, 임금에게 무겁게 보인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심술(心術)은 바르지 아니하니, 혹시 자기에게 거스리는 자가 있으면 몰래 중상하였다. 박용의 아내가 말[馬]을 뇌물로 주고 잔치를 베풀었다는 일은 본래 허언(虛言)이 아니다. 임금이 대신을 중히 여기는 까닭에 의금부가 임금의 뜻을 받들어 추국한 것이고, 대원(臺員)들이 거짓 복죄(服罪)한 것이다. 임금이 옳고 그른 것을 밝게 알고 있었으므로 또한 대원들을 죄주지 않고, 혹은 좌천시키고 혹은 고쳐 임명하기도 하였다. 만약에 정말로 박천기(朴天己)가 공술하지도 아니한 말을 강제로 〈헌부에서〉 초사를 받았다면 대원의 죄가 이와 같은 것에만 그쳤을 뿐이겠는가.
"
부분이 나오죠...
이 밖에 황희의 잘못된 부분은 이보다 몇군데 더 나옵니다.
절대로 이 사실로 보면 황희는 청백리가 될수가 없습니다.
단지 세종시절에 정승으로 24년간 정승이 되었다는 사실이 진실일뿐...
 
우리가 알고 있던 황희가 그 황희가 맞을까요?
과연 황희의 전설은 과연 무엇때문에 만들어졌고
그것을 믿게끔 한 사람들은 과연 누구일까요?
 
x-file 처럼 과연 진실은 어디에 있을까요?
 
이쯤되면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을 부정할때가 된것입니다.
우리는 피상적인 상식에 기대어 저사람은 역사관이 이렇다 저렇다고 말하지마는
그 역사관의 진실이 무엇인지
실제적인 실물을 확인하는게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에 대해 안이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인터넷이라는 정보의 바다에 살고 있다고 한지가 몇년이 흘렀습니다.
과연 이 정보의 바다가 얼마만큼의 신빙성을 가지고 있다고 의심을 해본적이 있습니까?
그 사실을 믿기 위해 차를 타고 버스를 타고 가서 실제로 그 사람에게, 아니면 그 현장에서 벌어지는 실제 사실에 대해 접해 본적이 있습니까?
 
황희라는 인물에 직접적으로 확실하게 씌여져 있는 온라인 조선왕조실록에 조차 접근하여 사실유무조차 확인하여 보지 않는데 어떻게 밀리언셀러라는 책에 대해 단 하나의 의심없이 믿을수가 있을까요?
 
데카르트는 방법서설에서 진리를 찾기 위한 방법에는 4가지가 있다고 했습니다.
 
첫째, 명증적으로 참이라고 인식되는 것만을 참으로 받아들이고, 명석 판명하게 내 정신에 나타나는 것 외에는 그 어떤 것에 대해서도 판단을 내리지 말 것.
둘째, 검토할 문제들을 각각 잘 해결할 수 있도록 가능한 한 작은 부분으로 나눌 것.
셋째, 가장 단순한 대상에서 출발하여 가장 복잡한 대상의 인식으로 나아갈 것.
넷째, 아무것도 빠트리지 않았다는 확신이 들 정도로 완벽한 열거와 검사를 어디서나 행할 것
 
좀 혼란스럽겠지만 명증적으로 참이라고 인식되는 것은 과연 이 현시대에서의 교과서나 동화책일까요? 조선왕조실록일까요?
가장 단순한 대상인 조선왕조실록에서 황희를 검색하여 분석하면 꽤 근접한 황희 정승의 실체가 드러나지 않을까요?
실록말고도 다른 고서를 찾아보면 더 정확하게 입체적으로 알수 있지 않을까요?
 
 
 -  역사란 언제나 패배자에게 등을 돌리고 승리자를 옳다고 하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
(S. 츠바이크 - 오스트리아 소설가:1881~1942)
 
역사의 잘못된 해석은 황희의 드라마틱한 동화책의 등장으로 역사의 아이러니를 만들게 됩니다.
아무리 박사면 무엇하고 아무리 많이 안다고 무엇하겠습니까?
제대로 아는 것이 없는데...
 
소크라테스의 처(크산티페)가 악처로 유명한데 과연 그게 진실일까요?
플라톤이 지은 "파이돈"에 보면 두 부부는 서로 의가 가득한 사이였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믿기지 않는다면 찾아보세요.
 
이거 점점 역사가 재미가 있어지고 있습니다.
역사와 철학의 만남이라니....
 
믿는 자와 믿게 하는자, 그리고 삐딱하게 그것을 부정하는 진실을 찾아내는 자.
누가 이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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